웨이크업 교회 로고


웨이크업 교회는 세계예수교장로회 총회(General Assembly of World Presbyterian Church: GAWPC)의 영미 노회 소속입니다. 세계예수교장로회 총회는 1974년 대한예수회장로교 합동 총회에서 미주 지역에 최초로 세운 미주 서부 노회를 모체로 합니다. 현재는 세계예수교장로교 총회와 미주 합동 총회가 연합하여 대한 예수교 장로교 합동 총회의 형제 교단으로써 사명과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웨이크업 교회는 2024년 6월 2일 7명의 장년과 6명의 청년, 1명의 어린이가 모여 첫 예배를 드리며 시작한 공동체입니다. 웨이크업 교회는 이런 교회가 되기를 원하여 모이는 주님의 몸입니다.




생명 목회

교회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목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동안 많은 고민과 노력들이 예배의 변화와 함께 있어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찬양과 예배와 설교 형태인가 보다는, 드려지는 예배, 찬양, 기도, 그리고 말씀에 생명이 흐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생명나무를 동산에 세우시고 하나님은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의 불 순종으로 닫혀진 그 길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 14:26)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다시 회복되었고 성령 하나님은 이 미래에 경험될 영생을 지금 경험하는 생명으로 현재형화 하셨습니다.
성령은 살리는 영이니 (The Spirit gives life) (고후 3:6).
예배는 '생명 충만'='성령 충만'을 경험하는 현장입니다. 이 생명이 충만한 예배에 함께 참여하는 성도들의 삶에 넘치는 '생명 충만'='성령 충만'의 축복은 우리 하늘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일입니다. 위대한 비전보다 이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희년 목회

생명 목회가 이루어지기 시작할 때에 누가복음 4장 18-19절의 말씀이 실제로 경험되어집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사61:1).
이 예수님의 취임사는 예수님 3년의 공생애를 규정짓는 선포였습니다. 이 선포 그대로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문자적으로 (육적 자유, 육적 치료) 영적으로 (영적 자유, 영적 치료) 예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생명 충만'='성령 충만'의 목회는 희년 목회를 가능케합니다. 이 희년 목회는 궁극적으로 성도들을 “드려짐”의 축복으로 인도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선포하고 경험하는 안식일, 공급자 하나님을 선포하고 경험하는 안식년, 소유자 하나님 (God the Owner)을 선포하고 경험하는 희년 은 예배를 완성시키는 연장 선상에 있는 기억하고 경험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승열, 잊혀진 희년의 회복, 예솔). 이 희년의 말씀이 실천되고 경험되어져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라 (롬 12:1)”는 예배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직선 목회

주님의 몸된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존재론적 변화를 경험합니다. 이 존재론적 변화의 시작은“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불교와 힌두교의 시간관인 원이 아닌 기독교 시간관인 “직선 시간관”은 시작과 끝을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그 시간안에서 부름 받은 우리 기독교인들은 개인과 교회 그리고 역사의 끝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왜 사나?”라고 물으면 기도교적 대답은“끝을 준비하며 산다, 죽을 준비하며 산다, 즉 잘 죽기위해 산다 “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의 가장 큰 힘 중의 하나였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공동체입니다.
원 시간관
직선 시간관
원 시간관직선 시간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8).
그 기다림은 정확한 시간관으로 오는 나의 정체성 확인부터 시작합니다. 그 때를 기다리며 서로 돕고 격려하며 정체성을 심어주는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공동체 목회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강력한 힘과 매력 중의 하나는 바로 친밀한 공동체성이었습니다. 가정교회와 셀 그룹 운동도 성경적인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현상입니다. 교회는 성경적인 공동체를 세우려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선교 목회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전도와 선교입니다. 그렇기에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 와 선교적 크리스천(missional Christians)이 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선교 활동이나 전도 보다 우선되어야 할 존재론적 변화, 즉 생명 목회, 희년 목회, 직선 목회의 변화가 가져오는 자연스런 결과가 선교와 전도로 이어져야 하고, 그에 따르는 교회와 신앙의 성장을 경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열방을 향한 우리 하늘 아버지의 마음은 내 교회를 넘어 “우리 교회들”로 발전하여야 하며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세계를 품는 그리스도인이 되가는 것입니다. 선교 활동보다 영혼 구원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먼저 품게 하는 선교 목회로 열방을 섬기고 성장을 경험하는 교회를 만들기 원합니다.

열린 목회

교회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같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며 같은 운명을 나누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이 다양한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힘은 “열린 마음”입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고후 6;11-13).
열린 마음은 서로 다른 재료들을 하나로 묶는 김밥의 김 같습니다. 열린 마음은 인식과 생각의 전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고후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영적 전쟁이 이 “세상 기준”들과의 싸움임을 분명히 합니다. 열린 마음은 내가 그동안 영향받아온 세상의 기준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채우는 포용의 마음입니다. 이 싸움은 위에 언급한 존재론적 변화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애뜻함과 배려로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교회를 만드는 힘은 존재론적 변화와 함께오는 자연스런 결과들입니다.성도들의 생각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채우는 열린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주님을 알아가는 목회

교회는 마리아 보다 마르다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리아를 칭찬하십니다. 교회의 많은 일꾼들과 사역 자들이 “탈진 burnout”을 경험하는 것은 마르다의 영성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은 그 과정입니다. 주님을 경험하지 않는 사역은 주님과 상관없는 사역이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이 그들 여행의 종착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그 여행의 종착지임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I brought you to myself (출 19:4).
우리 여행의 종착지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여행의 과정은 삼위 일체 하나님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저의 책 Knowing God through Journey and Pilgrimage (Wipf & Stock, Eugene USA, 2011)는 이 과정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저도 목회의 순간 순간마다 과정 과정마다 주님을 더 알아가고 저와 함께하는 성도들도 그 믿음의 길을 함께 걷게 하는 주님을 알아가는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무릎 목회

위에 언급한 모든 사역들의 시작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요청하는 초기 단계를 넘어서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전적 무능”의 고백으로 시작하는 “전적 의존”의 표현입니다. 지난 30년 제 사역의 결론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도는 제 사역과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철저하게 이 부분을 필리핀과 중국, 그리고 영국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5-10)
기도하는 목사, 기도하는 성도, 기도하는 교회는 선택사양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안에 거하는 무릎 목회는 사역의 동기를 순수하고 진실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